아유타야 왕국의 건국과 초기 왕들의 정통성

2025. 7. 14. 06:00# 태국의 역사/- 아유타야 왕국

1351년, 타이 역사에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다


아유타야 왕국의 건국

요약

아유타야 왕국(1351~1767)은 수코타이 왕국의 계승자이자,
동남아시아의 중심 강국으로 성장한 타이 민족의 두 번째 국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아유타야의 건국 배경과 **우통 왕(U Thong)**의 역할,
그리고 초창기 왕권의 정통성을 어떻게 확보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1. 수상도시 아유타야의 탄생: 지리와 전략의 결정

아유타야는 1351년, 차오프라야 강과 파삭 강, 롭부리 강이 만나는 지점에 건국됩니다.
이곳은 원래 몬족과 크메르 세력의 완충 지대였으나,
수로와 평야를 활용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요충지로 여겨졌습니다.

  • 홍수와 외침으로부터 안전한 반도 형태의 고지
  • 농업 생산력이 뛰어난 저지대
  • 강을 따라 형성된 무역·운송의 중심지

이 전략적 입지는 아유타야가 단기간에 동남아의 교역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2. 우통 왕(U Thong)의 등장과 권력 기반

건국자 우통 왕(또는 라마 티보디 1세)은 기록상 중국계 상인 출신, 또는 지방 귀족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인근의 롭부리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1350~1351년 무렵 전염병과 불안정한 정국 속에서
이주민과 귀족 세력의 지지를 받아 아유타야를 건국했습니다.

  • 수도 명칭은 고대 인도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아요디아(Ayodhya)’에서 유래
  • 즉위 후 왕위명을 **라마 티보디(Rama Thibodi)**로 삼음
  • 종교적으로는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정함
  • 행정적으로는 크메르식 왕권 구조를 도입해 절대권 강화

우통 왕은 정통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해 종교·제도·문화에서 다면적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3. 크메르 제국의 계승자라는 상징 조작

아유타야 왕국은 단순히 새로운 국가가 아니라,
앙코르 크메르 제국의 문명과 왕권을 계승했다는 상징을 적극 활용합니다.

  • 궁정 언어로 고대 크메르어와 산스크리트어 사용
  • 데바라자(신왕) 이념 수용 → 왕은 신의 현신
  • 행정 구조는 크메르 제국의 4부제(Sakdina 제도) 차용

이는 주변 부족 세력에게 아유타야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며,
무너진 크메르의 정치적 공백을 메우는 자로서 국제적 정당성을 얻고자 한 조치였습니다.


4. 초기 왕조의 정통성 강화 전략

우통 왕과 그 후계자들은 단지 정복과 건국만이 아닌,
문화적·종교적·상징적 요소를 통해 왕조의 정통성을 굳히려 했습니다.

  • 불교 중심 통치: 승려와 사원을 통해 통치 정당화
  • 왕조 연대기 편찬: 자신들의 조상을 수코타이·크메르 왕실과 연결
  • 왕실 후궁 정책: 주변 부족 출신 여성과의 혼인으로 통합 시도
  • 왕도리념(王道理念) 강조: “덕으로 다스린다”는 유교·불교 혼합 정치 이념

아유타야 왕권은 초창기부터 강력한 중심 권위제국적 통치의 외형을 갖추려 했습니다.


5. 수코타이의 영향과 병합

아유타야는 건국 초기에 수코타이 왕국과의 경쟁 관계를 유지했지만,
15세기 초반 라메수안 왕과 보로마라차티랏 2세의 시대를 거치며
점차 수코타이를 부왕국(종속 왕국)으로 흡수하게 됩니다.

  • 수코타이 왕실은 아유타야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음
  • 문화적으로는 수코타이의 불교 전통, 예술양식을 일부 계승
  • 수코타이 왕족 출신도 지방 총독이나 고위 관직에 임명됨

결국 아유타야는 수코타이를 흡수함으로써
태국 왕조사에서의 연속성과 정통성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핵심 키워드

아유타야 건국, 우통 왕, 라마 티보디, 데바라자, 크메르 계승, 수도 선정, 정통성, 수코타이 병합, 상좌부 불교